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츠나요시 (문단 편집) === 재정 부담과 상인 대두 === 츠나요시는 씀씀이가 큰 편이라 우선 [[불교]] [[절(불교)|사찰]] 수리에 재정을 팍팍 지출했다. 여기에 [[천황]]가를 우대하는 차원에서 역대 [[천황]]의 능 중 66곳을 재건하는 사업도 벌였다. 그런데 문제는 이러다보니 상인들에게 손을 벌리는 크기가 커져 [[막부]]의 경제적인 부담이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. 결국 사업을 너무 많이 벌여서 [[1695년]] <화폐주조령>을 내리게 되었다. 이 율령에 의해서 [[1706년]], [[1710년]]에 걸쳐 두 번 '겐로쿠 금•은'(元綠 金•銀)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당초 [[막부]]의 경제가 어려운 상태여서 금과 은의 순도가 낮아져 악화가 주조되었고, 일시적으로나마 재정이 회복되는 듯이 보였지만 물가의 상승만 일어났다. 덕택에 실물 경제를 쥐고 있었던 금•은좌(金•銀坐)[* [[막부]]의 명령 아래 화폐 주조에 관한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던 상인들의 통칭. 금화를 주조하는 상인이 금좌, 은화를 주조하는 상인이 은좌였다. 서양의 역사에 빗대어보면 Goldsmith, Silversmith에 해당하는 금은공예상공회와 비교, 가능하다.]와 나카마(仲間, 막부시대 상인동맹조합)들만 큰 이익을 보게 되어 [[막부]]의 경제는 사실상 상인들이 지배하게 되었다. 오죽하면 봉행(奉行, 막번의 무사들이 [[다이묘]]나 [[쇼군]]으로부터 받는 급료)도 상인들이 주게 되었다. 현대 사회에 대입해서 본다면, [[공무원]]들의 급여가 민간 기업을 통해 지급될 정도로 [[정부]]가 민간 기업에게 잠식당한 꼴인 셈이었다.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상인들이 득세한 덕에 이후 [[일본]]의 문화 소비자는 무사 계급에서 상인 계급으로 전환되었다. 전국시대의 무사들이 즐기던 [[노가쿠|노(能)]]와 농민들이 즐기던 덴가쿠(田樂, 전악)가 당시 일본의 문화를 대표하다가 상인의 이야기를 주된 스토리 라인으로 잡는 [[가부키]]가 등장하게 된 것도 츠나요시때부터였다. 막부 재정을 팍팍 낭비한 결과 [[쵸닌]](町人) 문화의 밑거름이 된 격이니 좋게 봐야 할지 나쁘게 봐야 할지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